영상물

바닷마을 다이어리

바평 2015. 12. 21. 01:13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볼때마다 쿄애니의 애니메이션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인즉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퀄리티 높은 영상물이라는 뜻이다.

나는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을 초반 몇 씬만 봐도 추후의 행동이 예측가는 인물이라고 본다.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지는 영상물의 인물들은 그런 특성을 보인다. 선인은 착하고 악인은 나빠서 선인이 악인을 이기고 권선징악한다. 이는 에피소드가 몇번을 이어져도 마찬가지이다.

헌데 성인적인 영화가 되어갈수록 선인과 악인의 구분은 모호해진다(여전히 유치한 성인영화는 논외로 친다. 야한 장면만 나오지 어린이 영화와 똑같다). 선인이 악인이 되고 악인은 선인이 된다. 우리는 이 사람을 틀에 박힌 존재로 파악할 수 없다.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스토리를 다 보고 이 사람의 행동을 다 관찰한 후에 이 사람을 알 수 있다. 입체적인 인물의 등장이다.

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2. 변증법적 사고양식을 대중 영화에 적용한다면 정은 바로 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같은 양상을 띌 것 같다. 클리셰들이 적절히 녹아있고 인물들은 박제되어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대중들은 바로 이러한 영화를 좋아한다.

허나 나는 모든 품격을 배격하는 편이다. 정반합중 반이 정에 내포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반을 옹호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이를 생각없는 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다. 더러운 순간적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영화. 현실을 왜곡하고 환상을 부여하는 동화적인 아동영화.


3. 하지만 그러기엔 퀄리티가 좋다. 처음에 쿄애니를 언급했는데 쿄애니의 작품들은 모두 진부하다. 딱히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쿄애니의 작품을 찾아본다. 이는 그들의 작품이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림이 멋지다. 스토리와 인물은 상관이 없다. 그냥 배경과 그림이라는 형식 자체가 나의 감각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보고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스토리가 나를 조금씩 화나게 하는것만 젖혀놓으면 바다의 원경이 기분좋게 해준다.

작품 여기저기서 짙게 배어나오는 일본풍과 담담한 화상들.
이런 경우를 두어 비유하자면 가사를 모른 채 들으면 좋은 음악같다고 하겠다. 선율이 너무나 차분하고 아름다운 외국어 노래인데 가사의 뜻이 '오빠를 영원히 사랑해 평생 바라볼거야'의 반복일 뿐이었다면 그 음악은 맛을 잃게 될것이다.


4. 심야 영화로 봤는데 괜찮았다. 볼 만 했다. 솔직히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을 보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또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었는데 그 정도 수준은 훨씬 뛰어넘었다.


+) 단선적(비입체적)인물들을 가지고 퀄리티 높게 만드는 담담한 영화는 아무리 봐도 일본이 최고수준이다. 헐리웃 영화는 단선적 인물들을 놓고 액션과 특수효과 떡칠을 통해 흥행할 뿐이다. 아마 프랑스 영화의 '정'은 발랑까지고 발칙하며 기발한 영화들일 수도 있겠다. 어떤 영화가 일반적인 것인지는 문화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