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24
과거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법에 대한 정열로 넘쳤다. 그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은 까다로운 규율을 자신에게 강제로 부과했으며, 소수는 자유주의의 원리와 법률의 보호 아래 생활하고 활동할 수 있었다. (...)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과대민주주의(hiperdemocracia)를 목격하고 있다. (...) 예전에 대중은 소수의 정치인들이 결함과 약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보다 좀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대중은 찻집에서 논의되는 화제들에 법의 힘을 실어줄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 우리 시대의 특징은 평균인이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차게 평범함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것을 어디서든 실현시키려는 데 있다. 미국의 대중들이 흔히 말하듯이 "남다른 것은 꼴사나운 것이다."
p 51
현대 - 다른 시대보다는 우월하지만 자기 자신보다는 열등하며, 매우 견고하면서도 자신의 문명에 대해서는 불안해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시대
p 64
진보주의자는 관대한 미래주의라는 가면을 쓰고서 정작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미래에는 놀라움도 비밀도 없고 중대한 사건도 본질적인 혁신도 없다고 다짐하고, 세계는 우회나 후퇴 없이 앞으로만 전진한다고 확신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고 현재라는 시점에 안주한다.
p 97
대중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현대의 대중은 매우 영리하며 다른 어떤 시대의 대중보다 더 많은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그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스스로를 폐쇄시켜서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대중은 항상 자신의 머리 속에 가득 쌓인 상투어와 편견, 지엽적인 생각이나 실속 없는 말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것들을 천진난만하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하게 아무데나 들이댄다.
p 118
특히 이런 과학에 대한 무관심은 다른 어떤 부류보다도 의사와 기사 등의 기술자 대중에게서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이들은 과학이나 문명의 운명에 최소한의 연대도 보이지 않은 채 자동차를 이용한다거나 아스피린 통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정신 상태로 자신의 직업을 수행한다. (...) 문명을 지배하기 시작한 유럽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복잡한 문명과 관련하여 원시인이자 별안간 등장한 야만인이며 '수직적 침입자' 이다.
11장, "자만에 빠진 철부지"의 시대
p 176
여론 법칙은 정치사의 만유인력이다. 이것이 없으면 역사학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흄이 매우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역사학의 주제는 여론의 주권을 유토피아적인 열망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 어느 때 인간 사회에 현실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친위대를 통해 지배하는 자도 친위대의 여론과 친위대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을 따랐던 것이다.
p 200
그러나 경박한 몸짓으로 이런 말을(유럽의 몰락) 하는 사람을 붙들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구체적인 확실한 현상이 뭐가 있는지 물어보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애매한 몸짓을 하며 우주의 원형을 향해 팔을 흔들어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난당한 모든 사람의 특징이다.
p 237 르낭(renan)의 국민국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의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위대한 사업을 함께 성취하며 그 밖의 다른 일도 행하길 바라는 것, 바로 여기에 한 민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조건들이 들어 있다. (...) 영광과 회한의 과거 유산과 미래의 사업 계획 (...) 국가는 일상적인 국민투표로 구성된다."
p 251
문명의 강제를 덜 받을수록 불가피성을 덜 느낀다. 불가피한 부대들로 구성된 삶보다 더 뿌리 깊은 삶도 없으며 더 토착적인 삶도 없다.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대중에 대한 생각의 일부가 정리되어 있는 책.
추천받아 읽게 되었는데 심심할때 한번 쯤 읽고 참조할 퀄리티인 것은 확실하다. 역자 서문에 보면 18세기에 사회계약론, 19세기에 자본론, 20세기에 대중의 반역이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정돈 아님ㅋㅋ
그래도 르봉의 군중심리가 너무 양식적인데 반해 이 책은 솔직해서 읽는 내내 재미가 있다. 철학자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한데 대중을 "자만에 빠진 철부지"라고 표현 한 부분에선 현실 웃음이 터졌다.
더군다나 시적이기도 해서
그러나 경박한 몸짓으로 이런 말을(유럽의 몰락) 하는 사람을 붙들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구체적인 확실한 현상이 뭐가 있는지 물어보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애매한 몸짓을 하며 우주의 원형을 향해 팔을 흔들어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난당한 모든 사람의 특징이다.
이 부분을 읽고는 문학 작품인줄 알았다.
아, 여기서 일컫는 대중은 실제 여론을 구성하는 기능론적 대중이 아니라(어느정도 동질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별 생각없고,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 탐구심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여 타인의 의견에 폐쇄적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여론을 파국에 이르게끔 만드는 그러한 대중들.
나는 좋아함에 관한 이론을 펼치면서 '오타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학자, 기술자, 운동선수 등등 모든 몰두자들)'을 옹호한 적이 있었는데 오르테가의 입장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읽는 내내 아주 시원했다. 동질적인 생각의 글을 읽는 건 얻는 게 없더라도 재미는 있다. 나야 뭐 과두정치를 이상향으로 가지고 있고 현실적 좌파를 혐오하니 새로울 게 없었으나 이런 종류의 글을 처음 접했더라면 충격적이었을수도 있겠지.
단지 이 책이 2부에 들어서면서 조금 발길을 잃게 되는데 비판에서->방향제시로의 연결고리가 좀 약하다고 해야하나. 초점을 벗어났다고 해야하나. 뒤쪽은 재미 없었다. 거기까지 괜찮았으면 훨씬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을듯(고상한 척도 좀더 하고).
보르헤스나 마르케스를 읽으면서도 느꼈었던 부분들인데 서어를 쓰는 사람들 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 보인다. 부럽다. 조만간 배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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