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을 위해 씁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정된 필자이자 독자는 나 자신인데, 나 자신은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우연에 의해 이 글에 접촉하게 되셨다면 자유로이 이용하십시오.






1. 일단 이거 수입하면서 제목을 왜 이렇게 바꿨는지 모르겠다.


자코 반 도마엘은 미스터 노바디를 본 이후 팬이 된 감독인데 예고편이나 제목이나 무슨 소소하고 저급한 SF 코메디물 느낌이 들어서


아니 이 사람이 이런걸 만들었단 말이야? 싶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굉장히 수작이고 진지한데다가 원제는 'le tout nouveou testament' , 즉 신약 성서다. 


제목때문에 안 보려 했는데 후회할 뻔 했다. 어휴 정말




2. 적당히 예술틱한 분위기


개인적으로 허세를 부리는 방식의 예술적인 분위기 안 좋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차용된 예술 형식들은 허세를 부리기 위해 과도하게 도입된 장치들이 아니라 뭔가 적재적소에 필요해서 삽입한 느낌이다.


클래식 음악이나 손의 동작, 사람의 몸짓, 새 무리의 형상 등. 




3. 기본적 맥락


이야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라고 하기엔 그것은 사람들의 입장이고, 실은 예수의 여동생인 에아가 하느님에게 반기를 들면서 시작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오빠가 J.C(Jesus Christ)인 부분에서 웃었다. 에아는 메소포타미아쪽 지혜의 여신이라는 듯 한데 연관은 잘 모르겠다.


바로크시대의 두 명제는 'Carpe diem' 과 'Memento mori' 였다.


각각 현재를 즐기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기억하게 되면 당연히 현재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순간의 즐김은 이미 타나토스가 깃들어 암울함과 함께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다.


에아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생애를 알게 되자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다 놓아버리고 현재를 즐기기로 한 사람들(진보적인)과


보수적으로 기존의 삶을 유지하기로 한 사람들(보수적인)이다.




4. 여성적 권력의 승리


위에서 나눈 부류 중, '현재를 즐기기로 한 사람들'은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이 영화 내에서 여성적인 존재들이 변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자면 가장 먼저 주인공인 '에아'부터 여성이고, 4번째 사도(어쌔신)를 변화시키는 것은 1번째 사도인 팔 한쪽이 없는 여성이다. 


3번째 사도(성도착증)는 독일인 여성에 의해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5번째 사도(고릴라녀)는 가정에 고릴라를 들여 인생을 바꿔 버린다. 


그냥 보아도 여성적인 인물들은 승리를 거둔다.


근본적으로, '딱딱하고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아버지 신을 몰아내고 '감성적이고 음악을 듣고 유한' 어머니 여신이 집권하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남편 신은 거의 악신(惡神)으로 등장하고 여신으로 신이 바뀐 세상은 하늘, 중력, 물 등의 기본적인 구조부터 자유롭게 바뀐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여기까지 페미니스트가 좋아할 법한 내용인 듯 하다.




5. 여성은 정말 승리하였는가?


위까지는 상당히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내용만 서술 했으니까. 

하지만 여기부턴 해석이다. 내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다. 감독 생각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여성적 권력이 승리하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딱딱하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며 살자라고 생각하면 결론은 편하다.


그러나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모든 요소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마지막에 여신(엄마)이 새로이 컴퓨터를 리부트 했을 때, 갑자기 남성 목소리의 비서 프로그램이 컴퓨터 안에서 나타난다. 


목소리(마치 아이폰의 시리처럼)는 남편이나 에아가 컴퓨터를 조작할 떄는 없었는데, 여신이 조작하자 갑자기 등장한다. 


여신은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며 잘 모르면서도 자기의 취향대로 '아무거나' 골라 삽입한다(컴맹의 전형). 


그러면 매력적인 목소리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따위의 입에 발린 말을 해준다. 


이 장면에서 '무능한 왕'과 실권을 쥔 비서(십상시 따위)의 구도가 떠오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나는 엄마가 진공청소기를 꽂으며 컴퓨터 플러그를 뽑았을 때,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행정적으로 수치화 하고 딱딱하여 공적 집단과 아버지를 떠오르게끔 하는 그 컴퓨터가 꺼졌을 때, 이제부터 감성적이고 음악적인 어머니의 정치가 시작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다시 컴퓨터를 키더니 거기에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뭔가를 갈아 엎을 땐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지 시스템을 유지한 채 지도자만 바뀌면 다시 독재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여신도 아무것도 모른다. 무능하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한다. 남신(아버지)나 여신(어머니)이나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브뤼셀에 심시티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여신에 의해 조작된 새로운 세상이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한 것이 무엇이던가. 


'하늘'의 벽지를 '꽃'으로 바꾸고(개인적으로 이 꽃들 보라색 독초 계통에 너무 알록달록해서 혐오스러웠다), 중력을 입맛대로 바꾸고, 해저에 사람이 살게끔 한 것이다. 


이것들은 '환경'을 바꾼 것이지 '인습'의 법칙을 바꾼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신 맘대로다.


사람들이 하하호호 하는 장면이 다수 나와 행복해 보이지만, 그런 장면들은 우리 현실에서만 찍어 편집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어 보일 수 있다. 나는 그 장면이 병적이라고 느꼈다. 



또한 에아의 상황을 보자. 에아는 6명의 사도를 두었다고 하고, 주인공으로 영화의 전면에 선다. 


다들 보면서 의문스러웠을텐데, 그럼 빅토르는 누구인가? 빅토르는 사도도 아닌데 서기 역할을 한다.


나는 여기서 반 여성주의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에아는 자신이 신의 자녀라며 빅토르에게 자기소개하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에아는 현실에 갓 나와 말그대로 '어린아이'인 상태이다. 쓰레기통에서 햄버거를 먹고 구토를 한다.


그런 그녀를 보살펴주는 것은 빅토르이다. 빅토르는 그녀에게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주고 보살펴 주며 시중을 들어 준다. 


에아가 빅토르의 등에 업혀 잠을 자는 부분이 가장 단적이다. 빅토르는 사실상 에아의 '응석을 받아주며' '놀아 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자. 4번째 사도가 고릴라를 데려와 자신의 남편을 쫓아낸 것은 여성이 남성권력을 물리치고 권력을 차지한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고릴라야말로 가장 거대한, 마초중의 마초의 아이콘이다. 그 울룩불룩한 근육과 터질 듯한 힘은 남성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녀는 현실의 남성(남편, 필립)에 만족하지 못한 채 아예 정신병적인 남성성에 투신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남성을 잊지 못하고 남성에 의존한다.


남편을 쫓아내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고릴라다. 그녀는 결정권을 쥔 듯 보여지지만 실은 수동적일 따름이다.


나머지 '여성권력'의 요소들로 제기되었던 부분들도 살짝만 비틀어 생각하면 정 반대가 된다.


이러한 부분들은, 종합되어


'표면상 대체된 여성권력은 배후로 숨어든 익명적 남성성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여전히 남성의 제국이다.'


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6. 아무리 봐도 영화에서 이슈되는 부분은 性이다.


이런 느낌을 가장 명확하게 한 것은 6번째 사도(윌리, 성을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이다. 


윌리는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옷만' 바꾸고 안경, 머리, 행동 등 하나도 바꾸지 않는다.


그동안 등장했던 '과도하게 꾸미는' 트랜스젠더들의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비튼 듯 보인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윌리는 클리셰적 맥락 상의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그가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도 제시되지 않고, 그는 여성의 몸가짐을 연습한다던가 열정을 보이지도 않는다. 


여성이 되고 싶다는 말은그냥 던져본 말 같다. 그는 자리에 앉을 때 치마를 입고 아빠다리를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에아와 윌리 사이에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며 명확해진다.


둘이 노는 부분들은 어린 연인의 모습이다. 그것은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그냥 남녀관계로 보인다. 입맞춤을 하는 컷은 그 정점을 찍는다.



7. 즐기되, 선을 지키자.


어찌 보면 윌리가 저런 식으로 표현된 건 이 영화가 과도함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 보인다.


2번째 사도(새를 쫓는 사람)은 방랑을 하다가 어떤 지점에서 이국적인 여자와 만나 정착한다(방황의 적정선, 끝이 있는 방황).


3번째 사도(성도착자)는 성도착의 진행 과정에서 에아에 의해 옛 독일인 누나와 재회한다. 그의 도착은 적정 선에서 마무리된다.


4번째 사도의 살인행각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1번째 사도 여성과 만나 더 이상의 살인행위는 없을 것임을 말한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 '정상'이 된다. 모두 적정 선을 지킨다. 6번째 사도인 윌리도 내가 보기엔 선을 지킨 쪽으로 보인다.


선을 지키라는 모티프는 중간중간 나타나는 '케빈'이라는 인물에 의해 구체화된다. 케빈은 '나 인생 62년 남았어!'를 외치며 온갖 자살 행위를 한다.


그 모습들은 유쾌하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케빈은 '나 인생 62년 남았어!'를 외치며 자살 행위를 한다.


그것은 영화의 내적 내용과, 형식을 뛰어넘는 '방종'이다. 케빈은 죽어버리고 만다.


이런 적정선을 넘어간 사람들 또한 보인다.


그들은 5번째 사도(고릴라녀)와 여신(엄마) 이다. 


고릴라와 함께 사는 것은 솔직히 말해 어떤 정신병적인 환상의 표현이라고 느껴진다. 


영화 내의 내러티브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서도, 그것이 현실적 커먼 센스와 합치되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리 대로라면 어떤 선을 넘어간 장면들은 오히려 거부감을 주게 된다. 고릴라와 침대에 있는 장면이 딱 그렇다.


고릴라와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아 보인다.


엄마가 구축한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신이 바꿨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기엔 병적이다. 디스토피아이다. 


내부자들에게는 그것이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신병적인 집단의 정신병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즐거울 수 밖에 없다. 


보라색 꽃이 가득한 하늘은 아무리 봐도 부정적인 느낌을 상기하는 이미지로 보인다. 바꾸는 것도 선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애초에 이 영화에서 가장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며 현재와 인생을 '즐긴'사람은 바로 신이다. 아버지 하나님 신이다.


그 즐김의 결과가 에아의 반란이며 하계에서의 모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카르페디엠'에 대한 무차별적 찬양이 아니다. 즐김엔 선이 있어야 한다.



8. 그래서 누가 이긴건데? 영화가 뭐라고 하는 건데?


이걸 성-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페미니스트는 아직 분발해야 하고 표면의 기만에 현혹당해선 안된다.


정치-실천적 관점에서 보자면, 무능한 독재자를 갈아 치우고 나면 무능한 독재자가 온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성-문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양성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 그곳에 행복이 있다는 점.


문화-실천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을 지키자는 점.


그리고 영화 자체는 오히려 보수적인 느낌이다.



9. 재밌었다.


ㅎㅎ 함축은 그렇다치고 스토리나 영상미부터 언어까지 맘에 들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