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17
1. 주인공이란?
주인공이란 서술자이며 혹은 주로 관찰당하는 대상이고 이야기의 '주'를 구성하기 때문에 주인공이라는 지위를 가진다.
이런 주인공, 주연, 조연, 기타 구성인물간의 뼈대는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살이 붙여지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예외적으로 백년의 고독이나 왕좌의 게임같이 복잡한 이름의 인물들이 난잡하게 등장하는 가문소설류에서는 그런 인물 도표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마치 희극같은 느낌으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히로인이고, 누가 적입니다! 하고 알려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클래식의 탈을 벗은 일반 대중 매체들에서는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유루유리는 그런 '주인공의 역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역설'이라 함은 '언어의 역설'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한 말이다. 언어의 역설이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라,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지개를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으로 인지하는데 어떤 아프리카 원주민은 15개의 단어로 세분하기 때문에 15색으로 인지한다더라... 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유루유리에서 아카리는 처음부터 '주인공' 이라고 말을 하기때문에 '주인공'이다. 그냥 처음부터 정확히 그렇다고 명시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게 주인공으로써의 지위를 획득한다.
나는 주인공이에요! 라고 말했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이때 아카리가 말을 거는 청자는 당연히 애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인데, 이렇게 작중 인물들이 독자/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 또한 서브컬쳐를 벗어나면 보기 힘든 형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카리는 존재감이 없고, 무시당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비중도 없고, 적대자도 없고, 이루어 내는 것도 없다. 사실 '얘가 주인공임ㅋ' 이거 아니었으면 절대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러한 아카리의 '존재감 없음'의 역할은 매우 모순적이고 반어적인 느낌을 준다.
어? 쟤가 주인공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하지?, 그리고 그것은 곧 웃음이 된다. 바로 '주인공의 역설' 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역설'식 구성은 단어를 한줄 한줄 읽어나가며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큰 비중을 가지는 소설에서는 시도되지 못할 것이다. 화면에는 구석탱이에 아카리를 박아놓는 것 만으로도 존재감 없음을 부여해줄 수 있으나, 소설에서는 등장하기만 하면 체호프의 총처럼 쏴지든지 맥거핀처럼 사람의 주의를 흐리든지 독자의 큰 관심을 끈다.
또한 영상 매체 중에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에서는 시도되지 못할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삶이나 죽음에 관련된 현실적 이야기 따위)를 하는데, 나는 주인공인데 왜 이럴까... 식의 태도는 시청자에게 전혀 관련없는 오로지 작품 내적인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유루유리가 서브컬쳐식 내러티브 구성요소를 최대한 활용하여 만든 개그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접하는 데에는 해당 장르의 형식에 어느정도 숙달이 되어 있어야 할 듯 하다.
2. 서사시적인 치유물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보면 중세 및 고대의 서사시들의 시대를 '별이 총총한 하늘로 뒤덮인 세상, 그리고 그 별이 인도해주는 길을 따라서만 가면 되는 아름다운 세상' 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바로 신앙이 존재하던 시대이고, 신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신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세에 대한 궁금증, 왜 사는지에 관한 허무감 등이 그때는 모두 명확하고 단정적인 어조로 답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신의 품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각자 인생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고 동질감을 획득하며 하나의 인생을 공유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서사시들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같은 내용이며, 아무데나 펴서 읽고싶은 대로 읽어도 된다.
유루유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적어도 작중에서는)딱 그런 서사시의 모습인 것 같다. 이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이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전혀 없다. 주어진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으며 그것대로 정해진 양 기계처럼 행동하여 행동 예측이 매우 용이하다. 이들이야말로 서사시적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러한 유토피아적인 서사시적 시대의 이야기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현실을 서서히 망각하며 도피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보고 나면 일시적인 즐거움을 얻는다. 그 즐거움은 현실이 개선된 것도 아니고 뭐 충격을 받은것도 아니고 스토리의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즐거움이다. 이런 은은한 즐거움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치유'라고 적는 것 같다.
유루유리의 에피소드들은 전혀 내러티브가 없다(특히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메인 스토리). 모든것들이 장르의 형식대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에피소드 3이나 에피소드8이나 차이가 없으며 그냥 랜덤으로 아무거나 골라 보아도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 또한 동질성을 획득하고 있는 서사시적 성격이다.
3. 꿀잼
뭐 이런거 다 거르고 위에 적었듯이 보고있으면 이유를 모르게 걍 아빠미소 짓게 됨ㅋㅋㅋ
물론 장르형식에 대한 적응(항마력)이 어느정도 되어 있지 않으면 굉장히 극혐일 수 있고, 이거 원작이 코믹유리히메(Comic백합녀) 던데 말그대로 백합(레즈)쪽 내용이 이상하게 많이나와서 좀 비현실적이긴 함.
그놈의 유루유리 하지마루요~☆이거 졸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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