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박약에 대하여

그동안 수많은 일들을 기획해왔고

시도했던 기획이 질려 시들어갈 즈음엔

항상 새로운 흥미거리가 나타나

(또는 하던 것도 재미있었지만 더욱 눈길을 끌었다는 긍정적 의미로)

무언가에 온전히, 꾸준히 집중했던 적이 없다

그동안은 언제나 새로운 목표들이 나타났고

나의 젊음은 그것을 받쳐줄 수 있다고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판단됐으므로

여기저기 진동하며 왔다갔다 하느라 바빴다

그러기에 이러한 고찰을 해 볼 기회도 적었는데

이제와서는 거진 대부분의 주제들을 입맛만 본 상태이고

더 이상 흥미를 끌만한 미지의 영역도 나타나지 않기에

나는 나태에 기반안 무료와 권태에 휩싸인채

그리고 그 감정을 빠져나가고 싶기 때문에 문제상태로 규정하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해본다


소설을 꾸준히 쓸 수도 있었으나 항상 구상에 그쳤고

철학을 전공할 수도 있었으나 나 독서에 게을렀다

작곡을 관둔 이유는 그 압도적인 디테일의 작업을 버틸 인내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고

기타를 못 치는 이유는 크로매틱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솔직히 열심히 하긴 했으나 정규적 교육과정을 따르기 싫다는 오만으로 그 노력을 공허로 만들었다

그림과 만화는.. 한컷한컷 조각해내기가 귀찮다

결국 이렇게 단편적인 잡상들만 그때그때 감정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표출할 수 있는

천지에 널린 바보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자아성찰은 좋은 일이 맞겠으나

그것이 문제가 되는것은

내가 이를 스스로에 대해 너무나 명확히 찌르고 있으면서도

그 뾰족한 고통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지 않을까

물론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현재의 내가 이렇게 될줄 과거엔 몰랐듯이

너무나 멋들어진 결과물들로 열등감을 그리는 음악 도서 영상 컨텐츠들

그 기만질에 내가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